후베이성 우한시 창강가의 서산에 있는 누각으로 후난성 웨양시의 악양루, 장시성 난창시의 등왕각과 함께 강남 3대 명루의 하나. 원화군현도지에는 삼국시대 오 황무 2년(223) 손권이 군사적 목적으로 성을 쌓고 황학루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황학루와 관련해서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그 중 극사록의 기재 내용에 따르면 신씨가 개설한 주점에 선인이 지나가다가 벽에 한 마리 학을 그렸는데, 그 모양이 춤을 추듯 아름답다고 알려지면서 이곳의 장사도 날로 번창하였으며 10년 후 선인이 다시 와 학을 타고 구름위로 날라 가자 신씨가 그걸 보고 황학과 도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누각을 짓고 이름을 황학루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제해지에는 선인 왕자안이 황학을 타고 이곳을 지나 근처의 산으로 올라가 산 이름이 황학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후대에 사람들이 산정에 누각을 만들어 황학루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당 영태 원년인 765년에 황학루는 이미 그 규모를 구비하고 있었으나 전쟁과 화재가 빈번하여 수차에 걸쳐 파괴되었으며 명청 양 대에만 7차에 걸친 훼손과 10여 차례에 걸친 중건과 수리가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동치 7년(1868) 재건되었다가 광서 10년(1884) 다시 훼손되어 청대의 건축물 중 동주루만 남아 있다가 1981년 우한시 정부가 중건을 결정하고 1985.6 낙성하기에 이르렀다.
황학루는 북송 시대부터 20 세기 50년대에 이르기까지 도교의 명산성지로 이용되었으며 또한 역대의 저명한 시인 최호(704~754), 이백, 백거이(772~846), 가도(779~843), 육유(1125~1210), 양신(1488~1559), 장거정등의 작품으로 인해 천하절경으로 평가되어왔다.
이 중 당대 최호의 작품인 황학루로 인해 더욱 더 알려지게 되었는데 일설에 따르면 천보 3년에 이백이 황학루에 올라 즐기고 있다가 최호의 시를 발견하고 찬탄을 금하지 못하였으며, 창강의 그림 같은 풍경을 시로 쓰고자 하였으나 최호의 경지를 뛰어넘지 못함을 탄식하며 붓을 씻어 버리고 배를 타고 강남으로 떠났다고 전한다. 1927년 마오쩌둥이 우창(무창) 방문 시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2007.5 국가 66개 5A급 여유경구의 하나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