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부 한면은 역사와 문화가 융합된 영상이고 다른 한면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풍경이다. 유구한 역사문명과 찬란한 동방고대문화로 국내외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곡부는 기나긴 봉건사회에서 줄곧 사람들의 성지로서 서방인사들한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우고 있다.

곡부는 중화민족 시조 발상지이자 은상 노나라의 고도이며 유명한 사상가 、교육가、유교 시조인 공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공자(기원전551년-479년)는 춘추말기 노나라 사람으로서 수많은 덕과 재주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였을뿐만아니라 유교를 창설하여 중국문화를 또 한개의 고봉으로 이끌어나갔다. 유가사상의 영향을 받아 곡부는 학술이 발달하고 인재로 넘쳤으며 유구한 역사, 풍부한 문화는 세계에게 휘황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것은 공묘、 공부、공림이다

공묘는 공자를 기념하고 유가학설을 표창하는 사당이다. 공자의 옛 저택으로 발전해온 공묘는 황궁의 규격으로 건설되었으며 고대 3대건축물중의 하나로서 세계건축사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공묘는 기원전 478년에 짓기 시작하였는데 공자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노애공이 그의 저택을 사당으로 개조한것이라고 한다. 그후 역대 황제들의 명령으로 부단히 확대하여 지금의 규모로 건설되였다. 여기에는 공자의 소상도 있으며 공자의 일생을 제재로 하여 조각한 120개의 성기도 있다. 그리고 한조이래의 800여개의 비석과 원래 공묘에 있는 1200여개의 비석을 합쳐 또 하나의 비림을 형성하였으며 이는 우리 나라 고대 서법과 문화예술을 연구하는 보귀한 재료이다

공부는 공자 후대들이 세세대대로 거주하고 있는 저택이므로 청조 황제궁실에 버금으로 가는 가장 큰 관저이다. 또한 중국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옛 저택이기도 하며 공묘、공림이 발전할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조이래의 역대 비석과 대량의 진귀한 문물이 보존되여 있으며 천하제 1집이라고 불리운다. 공부는 명조, 청조의 건축양식에 따라 정연히 배열되어 있으며 10만여가지 문물과 유구한 문서저작도 저장되여 있다.

공림은 공자 및 공자후대의 묘지로써 10만여개의 무덤이 배치되여 있으며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가족 묘지이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후 제자들은 여러 곳에서 수많은 기이한 나무를 옮겨와 무덤 곁에 심어놓았다. 지금 묘소에 10만그루의 신기한 나무가 있는데 그중 200여년이 되는 나무가 9,000그루 있다. 그외 카이팅、주짜오팅은 역대 황제들이 공자 제사 지낼때 휴식하던 곳이다. 유명한 학자 곽말약은 “공림은 훌륭한 자연박물관이자 공씨가족의 역사를 기록한 그림이다”고 평가하였다.

주소:공묘와 공부는 곡부시 남문에 위치하며 공림은 곡부 성북에 위치하여 있다.
입장료:공묘-90위엔、 공부-60위엔、공림-40위엔、종합표-150위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