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히도르는 전략적으로 지극히 중요한 마닐라 만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던, 요새화된 중요한 섬이었다. 20세기 초, 필리핀이 미국의 지배를 받을 때, 미국 육군은 바타안 반도에서 루손의 본섬까지 3.2㎞에 걸쳐 올챙이 모양을 한 이 섬에 대규모 건축 작업을 실시했다. 중포대가 설치되었을 뿐 아니라 코레히도르 섬에는 복잡한 터널이 그물처럼 파였는데, 행정 사령부, 여러 개의 육군 병영, 지하 병원, 그리고 1만 명이 최대 여섯 달까지 버티기에 충분한 물과 식량을 저장한 저장고를 갖추고 있었다.

1941년 12월 일본인들이 루손을 침공하자, 미국과 필리핀 군대는 바타안 반도로 후퇴했다. 코레히도르는 중포와 공중 폭격을 받게 되었지만, 미군의 위치가 정말로 위태로워진 것은 1942년 4월 9일 바타안의 방어군이 항복했을 때였다. 그러자 일본군은 전 화력을 코레히도르 섬으로 돌렸다. 코레히도르의 대포들은 멀리 있는 해상 목표물을 맞히는 데에 사용되던 것이었으므로, 몇 대의 중박격포를 제외하고는 바타안에 있는 일본 육군을 상대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섬은 초토화되어 항복했고, 5월 5일 일본군 상륙 부대가 섬에 도착했을 때에는 조직적인 저항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일본군이 터널망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미군 사령관 조나단 웨인라이트 중장은 항복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판단하여 필리핀에서 저항하는 것을 멈추었다.

오늘날의 코레히도르 섬은 엉망이 된 군사 시설들이 전투 직후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역사 유적지이다. 이곳은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으며, 전쟁을 겪어야 했을 뿐 아니라 일본군 포로로 잡혀 3년 이상을 고생해야 했던 살아남은 노병들에게는 반추의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