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은 스페인이 필리핀 제도를 점령했을 때 발전했다

인트라무로스는 300년 이상 필리핀에서 스페인 지배의 중심지였다. 성벽 안에 있는 이 도시는 요새 시설로 둘러싸여 있는 주택과 교회, 학교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이름은 ‘성벽 안쪽’을 의미하는 라틴어 ‘인트라 무로스'(intra muros)에서 유래했다.

인트라무로스는 파시그 강과 마닐라 만에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스페인 통치를 받기 전에 이 도시는 토착민 우두머리들과 말레이인 무슬림들의 권력의 중심지였다. 1570년, 스페인인들이 마닐라 만에 도착했으며, 일 년간의 전쟁 이후에는 토착민 지배자들과 평화 협정을 맺었다. 스페인 총독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이 도시를 필리핀 제도의 스페인 통치 중심지로 선포했다. 1573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중세의 성채 건물을 토대로 삼아 세워진 이 성벽은 64헥타르의 지역을 감싸고 있으며, 두께가 8m에 높이는 22m에 달한다.

단지 내에는 총독의 궁전, 마닐라 대성당, 여러 개의 종교 학교와 대학 등 중요한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인트라무로스는 일본 점령군의 기지로 사용되었다. 마닐라 전투(1945) 때 인트라무로스는 거의 모든 부분이 파괴되었다. 성벽 안에서 멀쩡하게 남은 유일한 건물은 산 아구스틴 교회(1587~1606년 건축)였다. 성벽에 있던 주 요새들 중 하나인 산티아고 요새(1571년 처음 세워짐) 역시 살아남았으며, 스페인 통치에 대한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이 박물관에는 처형되기 전에 이 요새에 갇혔던 필리핀 민족주의자 영웅인 호세 리살을 기리는 사당도 있다.

1980년대에, 인트라무로스 지역은 복원되었고 마닐라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현대화의 영향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마닐라 대부분 지역과는 달리 인트라무로스는 아직 스페인 점령 시대에 설계된 면모들을 간직하고 있다. 급속한 변화의 물결이 마닐라와 필리핀 전역을 휩쓸고 있음에도, 인트라무로스만은 필리핀을 지배했던 스페인 통치시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