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년부터 히로시마한[広島藩]의 한주[藩主]인 아사노나가아키라[浅野長晟]가 별저(別邸)의 정원으로 지은 것이다. 정원의 명칭은 많은 경승지를 축소하여 표현한 것에서 유래하는데 중국 항저우(抗州)의 시후(西湖)를 모방, 축소하여 만들었다. 정원의 중앙에 다쿠에이치[濯纓池]를 파고 크고 작은 10여개의 섬을 만들고 주위에 산을 쌓고 계곡, 다리, 다실(茶室), 정자 등을 기묘하게 배치하고 있다. 이것을 잇는 길을 따라 회유(回遊)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런 종류의 정원을 회유식[回遊式] 정원이라 하는데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에 시작되어 에도시대[江戸時代] 초기에 최고로 유행한 형식이다. 모든 다이묘[大名]의 대부분의 정원이 이에 속한다. 처음 조영한 당시의 이름은 센스이야시키[泉水屋敷]였다. 7대 한주인 아사노시게아키라[浅野重晟]가 교토[京都]에서 명공(名工)을 불러 연못의 중앙에 있는 고코교[跨虹橋]를 조영하는 등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이때 정원 내에 있는 건물 등 34곳에 중국풍의 호를 붙였다고 한다. 메이지시대[明治時代] 이후에는 아사노가[浅野家]의 별장으로 이용되었고 이즈미테이[泉邸]라 불렀다. 1940년 아사노가가 히로시마현에 기부하였고 같은 해 나라의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1945년 원폭 피해로 거의 파괴되었지만 1951년 청풍관[清風館], 명월정[明月亭] 등을 복원하고 슛케이엔[縮景園]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코교는 원폭의 폭풍에도 견디어 낼 정도로 튼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은 히로시마역[広島駅] 또는 히로시마전철[広島電鉄] 하쿠시마선[白島線] 슛케이엔마에역[縮景園前駅]에서 내려 걸어간다. 주변에 원폭돔[原爆ドーム],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広島平和記念資料館], 평화기념공원[平和記念公園] 등의 명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