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인종() 때인 1061년 건립된 뒤 명나라 인종() 때와 헌종() 때 복구되었으며, 만력제() 때 증축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자연적 침식과 전란 등으로 인하여 청나라 중반에 이르러서는 허물어진 담벽만 남은 폐허가 되었다. 가경제() 때인 1829년 다시 개수되었으나 항일전쟁과 내전으로 또 파손되어 청나라 때의 서예가 철보()가 쓴 ‘펑라이거’ 현판 외에는 모두 유실되었다. 신중국 성립 이후 1984년의 대규모 보수공사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 개수되어 옛 풍채를 회복하였다.

펑라이거는 넓게는 누각 외에 미퉈사[]·용왕궁()·천후궁()·삼청전(殿)·여조전(殿) 등의 건축물을 포함하는 건축군을 지칭하기도 한다. 누각은 산둥반도[] 북부, 보하이만[] 남쪽 기슭의 단야산[] 꼭대기에 있다. 북쪽으로 넓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바닷가에서 머지 않은 곳에 경치가 빼어난 창산열도[]가 있다. 봄·여름·가을이 되면 신기루() 현상이 자주 나타나 구름안개 사이로 누각과 정자, 도시 등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도시의 거리를 지나는 행인과 마차, 푸른 삼림과 산봉우리, 때로는 전쟁터에서 전마()들이 질주하는 광경 등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누각은 2층 헐산식() 지붕의 목조 구조이며, 높이는 13m이다. 16개의 큰 마호가니 기둥이 전체 누각을 받치고 있다. 누각의 위층에는 정교한 회랑을 만들어 멀리 조망할 수 있다. 건립 이후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들러 경관을 감상하였다. 송나라의 문호 소동파()는 “신기루는 환상에 지나지 않고, 충신과 효자가 바로 신선이다”라는 주련을 남겼는데, 현재 누각 동쪽의 소공사() 안에 걸려 있다. 동쪽에는 관란정()과 명나라 장군 척계광()이 해군을 훈련시키는 수성()이 있고, 서쪽에는 피풍정()이 있다. 1982년 펑라이거를 포함한 건축물과 펑라이수성[]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