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우리 민족 고유의 영산()이지만, 중국은 청나라 만주족의 발상지로 「창바이산(장백산) 문화론」을 내세우고 있다. 백두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백두산이라는 단어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등 우리 민족의 역사를 지우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창바이산(장백산)이라는 명칭 자체가 백두산을 중국 문화권으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시각이 대다수다.

반면, 백두산의 창바이산 표기는 중국 옛 왕조시대부터 해오던 것이기 때문에 이를 동북공정에 연결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중국에는 백두산을 2000여 년 전부터 창바이산으로 표기한 기록이 있다. 역사가들은 고구려에서 태백산, 고려에서 백두산이라고 부르다가 조선 세종 무렵부터 백두산ㆍ장백산을 혼용한 것으로 본다. 국내에도 <세종실록>에 백두산을 창바이산이라고 칭한 기록이 남아있으며(세종 21년ㆍ1439년 8월), <선조실록>에도 역시 같은 기록이 있다.

한편, 백두산이냐 창바이산이냐 하는 한ㆍ중 대립은 백두산 영유권에서부터 비롯됐다. 1712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백두산정계비를 천지 남동쪽 4km 지역에 세우면서 천지를 포함한 백두산 북쪽은 청나라가 차지했고, 남쪽은 조선 영토로 인정받았다. 이후 1962년 북한은 중국과 국경 조약을 체결하면서 백두산 남동부 영유권을 얻었다. 현재 백두산의 75%는 중국 땅, 25%는 북한 땅에 속해 있고, 백두산 천지의 54.5%를 북한, 45.5%를 중국이 관할하고 있다.

(사진: 길림성, 장백산 자연보호구역 남동쪽에 위치한 三宽网)